지난 2월, 마포 아트센터에서 제1회 전국대학생재즈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축제의 총 기획단장이 대학생이라면 믿겨지시는지?
스물다섯. ‘최연소 공연예술감독’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공연기획자의 꿈을 키워가는 열정적인 청년 예술감독, 이명재씨를 만났다.

 

 

고2, 내 인생의 전환기 
 

Q1. 공연기획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난타라는 작품을 봤어요. 제대로 감상한 공연으로는 처음이었죠. 그 공연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끝나고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품고 있는 이상과 생각들을 공연에 담아 무대에서 선보이고, 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후 난타를 기획하신 송승환씨에 대한 기사를 통해 ‘공연기획자’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나도 멋진 작품과 공연으로 관객에게 행복감, 더 나아가 희망과 비전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공연기획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소망을 품었던 순간의 감동은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제 생활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Q2. 원래 경영학을 전공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전 원래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음악산업시장에서 일하는 ‘음악경영인’이 목표였어요. 음악은 원래 좋아했으니까, 대학에서는 먼저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의 바람도 그렇고, 저 자신도 당연히 대학은 경영학과로 진학하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1 후반부에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거에요. 이대로는 공부는커녕 밖에 나가기도 힘들다는 소리였어요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공부를 못하는 마당에 좋아하는 거라도 열심히 하자 라는 생각으로 중학교때 교회에서 치던 드럼을 다시 잡게 되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드럼을 조금씩 치다보니 건강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에요. 공부하면서 눌렸던게 풀려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이에 힘입어 1년 6개월 동안 받아야 한다던 치료를 6개월로 단축시켰어요. 그때 느꼈죠. 아, 나는 음악 안하면 죽겠구나. 음악부터 하자. 그래서 음악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고2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는데, 그때 비전을 찾게 되었으니 오히려 지금은 감사해요. 

 

Q3. 대학 진학 후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처음에는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조그만 무대, 길거리 가리지 않고 무작정 공연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두 번 공연을 하다 보니까 역할분담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때부터 어설프게나마 ‘기획’이란 걸 시작하게 된거죠. 이렇게 하다보니 좀 더 큰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여기서 필요한 재정적인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 스폰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대학생이 기획하는 공연에 기업이 스폰을 해주겠어요?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교수님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시면서도 기획서를 제출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난생 처음 써보는 기획서라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무번 정도 다시 써 간 뒤에야 받아주셨어요. 이를 통해 교수님이 아시는 분들을 소개해 주셨고, 본격적으로 스폰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리저리 발로 뛰며 끈질기게 부탁한 결과, 감사하게도 몇몇 기업에서 가능성을 보시고 후원해 주셨어요. 이렇게 재정적으로 후원을 받은 연합공연을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소위 ‘망한’ 공연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죠.  

 

 


군대는 기회의 땅
 

 

Q4. 전국재즈페스티벌 준비를 군대에서 했다고 하셨는데요


네. 그렇게 다양한 연합공연을 하다가, 군대에 가게 되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군대는 지옥이라고 말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군대라는 곳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군대 휴가중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갔다가 대학생들만의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국 규모의 대학생 축제 기획을 위해 군대에서 가질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재즈 페스티벌을 위해 기획단을 모집했고, 열정 가득한 친구들을 선발할 수 있었어요. 다들 얼마나 열심히 였는지, 준비 과정중에 제가 군인 신분이었으니 모집된 팀장들이 면회를 와서 회의를 진행할 정도였어요.(웃음) 그렇게 기획하게 된 것이 바로 이번 ‘전국대학생재즈페스티벌’(이하 전재페)이에요. 군대에서도 저는 약간 별난 사람으로 유명했어요. 항상 비전 이야기 하고, 꿈에 대해 이야기 하니까요.


Q5. 군대에서도 꿈장이셨군요.^^ 그럼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준비하신건가요?


제대 후에는 그동안 틈틈이 벌어뒀던 돈을 들고 바로 영국으로 날아갔어요. 한달동안 1000개의 공연이 펼쳐지고 전세계에서 온 1000만명이 즐기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애딘버러 축제를 보기 위해서였죠.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는 극단의 거리홍보단으로 가게 되었는데, 정말로 다양한 길거리 공연과 실험작들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볼 수 있었어요. 아무리 값비싸고 유명한 공연이라도 학생을 위한 표를 저렴하게 따로 남겨두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을 많이 배출하는 영국의 문화적 힘은 이런데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한민국의 청소년 문화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희망도 생겼구요.

 


그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전재페 준비에 착수했어요. 원래 저는 사람과 어울리는걸 정말 좋아하는데, 공연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획단 친구들에게 부러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어요. 덕분에 “공도 공, 사도 공”이라며 ‘이사장’ 별명을 얻게 되었죠. 하하. 물론 공연이 끝난 지금은 모두 말 트고 친구처럼 지내요.

 

 

 

3.5차까지의 꿈,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놔

Q6. 치열하게 살 수 있는 이명재씨만의 비결이 있나요


저는 매일 그날그날의 To do list를 작성하고, 지켜나가는게 습관이 되었어요. 어차피 지키라고 세워놓은 계획이니까, 저는 좀 독하게 지켰어요. 이걸 안 지키면 잠을 안자고, 밥도 안 먹어요. 처음엔 다섯 개정도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스무개가 넘어가더라구요. 나중엔 계획을 실천하며 하나하나 목록을 지워가는 재미에 더 많은 계획도 실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한 매일의 계획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전에 장기적인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게 바로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니까요. 일단 비전이 있다면, 그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울수록 좋은 것 같아요. 저는 3.5차 비전까지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에요. 1차 비전은 지금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전재페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대학생의 축제로 성장시키는 것. 공연기획자로서 대한민국 뮤지컬 어워드에 초청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인지도를 쌓고 싶어요. 2차 비전은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기업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업후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싶어요. 가명은 MJ 엔터테인먼트에요. 그리고 3차 비전은,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어 제가 영국에서 느꼈던 그 마음 그대로, 대한민국의 청소년 문화를 발전하는데 이바지 하는 사람이 되는거에요. 3.5차는… 치열하게 살다가 은퇴하고 호주에서 오렌지 농장 경영하기. 하하. 진심이랍니다.

 

 

더 큰 세상으로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냐구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고 싶어 캐나다에서 최고의 음악대학중 하나로 손꼽히는 Humber대학으로 편입했어요. 3년동안 어학과정과 이론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연기획자 과정을 밟고 한국에 돌아오는 게 계획이에요. 학비요? 첫 학기 등록금만 가지고 간답니다. 거기서 어떻게든 벌어야죠. 꿈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고생할 각오는 해야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물론 제 계획대로 모두 이루어 질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간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비전이 있으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힘들더라도 견뎌낼 수 있어요.

 

 

비전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 수도 있구나. 인터뷰 내내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의 비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이명재씨에게서는 무엇이든 감수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결국은 이룬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청년 공연기획자 이명재. 언젠가 그가 기획한 공연을 세계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미래의 작품 두 개의 내용에 대한 설명도 들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나중에 직접 공연으로 만나보기로 하자.)


[원문] 공연기획가 이명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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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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